매화는 벚꽃보다 먼저 봄을 알리는 꽃이다. 겨울의 끝자락, 아직 쌀쌀한 공기를 뚫고 피어나는 매화는 추위를 견디는 강인함과 은은한 향기로 오랫동안 선비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매화는 화려하지 않지만 차분한 존재감으로 초봄 여행의 설렘을 더해준다.
매년 2월 중순부터 3월 중순까지가 전국 매화의 개화 시기다. 남쪽 지방부터 시작해 점차 북상하며 봄소식을 전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매화 계절이 돌아왔다. 벚꽃처럼 관광객으로 북적이지 않아 한적하게 감상하기 좋다는 것도 매화 여행의 장점이다.
1. 광양 매화마을, 한국 최고의 매화 군락지

전라남도 광양시 섬진강변에 자리한 매화마을은 한국에서 가장 압도적인 규모의 매화 풍경을 자랑한다. 19만 8천 제곱미터에 달하는 면적에 10만 그루 이상의 매화나무가 심어져 있다. 매년 3월이면 산비탈 전체가 눈이 내린 듯 하얗게 변한다.
매화마을의 중심은 청매실농원이다. 매실 명인 홍쌍리 여사가 30여 년간 가꿔온 이곳은 매화뿐만 아니라 매실 문화를 함께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농원 입구에는 1,800여 개의 옹기 항아리가 줄지어 서 있다. 장독대 너머로 보이는 섬진강과 매화꽃이 어우러진 풍경은 한국적 미감의 정수를 보여준다.

청매실농원 뒤편 전망대에 오르면 매화마을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흰 매화 군락이 강을 따라 흘러내리는 모습이 마치 구름이 땅에 내려앉은 것처럼 보인다. 전망대까지 이어지는 산책로는 4가지 코스로 나뉘어 있으며, 각 코스마다 15분에서 30분 정도 소요된다.
매년 100만 명 이상이 찾는 광양 매화축제는 보통 3월 초중순에 열린다. 축제 기간에는 매실 하이볼 체험, 매화 목공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된다. 입장료는 성인 5,000원이지만 지역 상품권으로 100% 환급해준다. 주말에는 주차장까지 몇 시간 대기해야 하므로 새벽 일찍 방문하는 것을 권한다. 이른 아침 물안개 핀 섬진강과 함께 보는 매화는 평생 잊지 못할 풍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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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치: 전라남도 광양시 다압면 지막길 1길
- 개화 시기: 3월 초~중순
- 주차: 가능 (주말 혼잡)
2. 창덕궁 낙선재, 고궁에서 만나는 고품격 매화
서울 시내에서 가장 품격 있는 매화를 보고 싶다면 창덕궁 낙선재를 찾으면 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창덕궁은 조선 시대 왕들이 가장 오래 머문 궁궐이다. 자연 지형을 훼손하지 않고 조화롭게 배치한 건축미가 인정받았다.
낙선재는 헌종이 왕실의 학문 전통을 이어가기 위해 건립한 공간이다. 이곳에는 백매화, 청매화, 홍매화가 모두 피어난다. 백매화와 청매화는 꽃잎이 모두 흰색이지만, 꽃받침 색으로 구분한다. 꽃받침이 붉으면 백매화, 초록이면 청매화다. 낙선재 앞뜰의 백매화와 청매화는 3월 중순에 절정을 이룬다.
낙선재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성정각 자시문 앞의 홍매화다. 수령 400년으로 추정되는 이 나무는 매년 붉은 꽃잎을 겹겹이 피워낸다. 오래된 기와지붕과 붉은 매화가 만들어내는 조화는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는 구도다. 고궁의 정제된 분위기 속에서 피어나는 매화는 세속을 떠난 듯한 고고함을 담고 있다.
창덕궁은 입장료가 있다. 궁궐 전각 관람은 성인 3,000원이며, 후원까지 관람하려면 추가 요금이 발생한다. 한복을 착용하면 무료 입장이 가능하다. 매주 월요일은 휴무다.
-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
- 개화 시기: 3월 중순~하순
- 입장료: 성인 3,000원 (한복 착용 시 무료)
3. 통도사, 350년 수령의 홍매화 ‘자장매’

경남 양산의 통도사는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3대 사찰 중 하나다. 부처의 진신사리가 봉안되어 있는 불보사찰로, 신라 자장율사가 창건했다. 이곳에는 자장율사의 법명을 딴 ‘자장매’라는 이름의 홍매화가 자리한다.
통도사의 홍매화는 수령 350년으로 추정된다. 매년 2월 말이면 경내 곳곳에서 붉은 꽃을 피워낸다. 사찰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홍매화가 어우러지면 수행자의 청정한 마음을 닮은 듯한 풍경이 완성된다.
통도사는 봉은사, 화엄사와 함께 한국 3대 홍매화 명소로 꼽힌다. 규모는 광양 매화마을만큼 크지 않지만, 절의 단청과 기와를 배경으로 피어난 매화는 차분한 아름다움을 전한다. 사찰 특유의 고요함 속에서 감상하는 매화는 마음을 정화하는 힘이 있다.
통도사는 연중무휴로 개방되며 입장료는 없다. 다만 성보박물관은 매주 월요일과 명절에 휴관한다. 사찰 내부에서는 정숙이 요구되므로 조용히 관람해야 한다.
- 위치: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통도사로 108
- 개화 시기: 2월 하순~3월 초순
- 입장료: 무료
4. 순천 금둔사, 한국에서 가장 이른 매화

전라남도 순천시 금전산 기슭의 금둔사는 한국에서 가장 빨리 피는 매화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의 납월매는 음력 섣달(납월)에 꽃을 피운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일반 매화보다 약 두 달 빠른 2월 초면 꽃망울을 터뜨린다.
금둔사는 9세기 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찰이다. 창건 연대와 창건자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신라 시대 징효대사가 머물렀던 선종 사찰로 전해진다. 현재 경내에는 6그루의 납월매를 비롯해 100그루 이상의 매화나무가 자라고 있다.
금둔사의 매화는 광양이나 통도사처럼 화려하게 피어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천년 고찰의 그윽한 분위기 속에서 은은하게 피어나는 모습이 오히려 특별한 정취를 만들어낸다. 사찰 주변 산길을 따라 걸으며 매화를 감상하면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듯한 착각이 든다.
금둔사 인근에는 낙안읍성 민속마을이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순천만국가정원까지 연계하면 하루 일정으로 충분하다. 입장료는 없으며 주차 공간이 넉넉하다.
- 위치: 전라남도 순천시 낙안면 금둔사길 91
- 개화 시기: 2월 초~중순 (납월매)
- 입장료: 무료
5. 봉은사, 도심 속 천년 고찰의 봄
서울 강남 한복판, 삼성동 코엑스 인근에 자리한 봉은사는 도심 속 오아시스 같은 사찰이다. 신라 시대 연희국사가 794년 창건한 천년 고찰로, 조선 시대에는 선릉을 지키는 능침사찰이 되었을 만큼 역사가 깊다.
봉은사의 홍매화는 통도사, 화엄사와 함께 한국 3대 홍매화 명소로 손꼽힌다. 대웅전 뒤편 영각 근처에 자리한 홍매화는 나무가 크고 꽃을 많이 맺어 3월이면 붉은 꽃구름을 만들어낸다. 현대식 빌딩 숲을 배경으로 핀 고찰의 홍매화는 도시와 전통,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독특한 풍경을 연출한다.
봉은사는 접근성이 뛰어나다. 지하철 9호선 봉은사역에서 도보 1분 거리에 있어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편리하다. 코엑스, 스타필드, 한강 등 주변 명소가 많아 데이트 코스로도 인기가 높다. 사찰은 새벽 4시부터 밤 10시까지 개방되며, 입장료는 없다.
매화를 감상한 후 봉은사 경내를 천천히 거닐어보는 것도 좋다. 도심 한가운데에서 이토록 고요한 공간을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빌딩 숲 사이로 들려오는 염불 소리와 매화 향기가 어우러지면 복잡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는 느낌을 받는다.
- 위치: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 531
- 개화 시기: 3월 초~중순
- 입장료: 무료
매화는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추위를 견디며 가장 먼저 봄을 알리는 절개와, 멀리서도 느껴지는 은은한 향기로 오랫동안 사랑받아왔다. 벚꽃이 만개하기 전, 조용히 초봄의 정취를 즐기고 싶다면 매화 명소를 찾아보자. 아직 쌀쌀한 공기 속에서 피어난 매화 한 송이가 전하는 봄의 메시지는 분명 특별할 것이다.
이른 봄, 매화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봄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설렘을 선사한다. 광양의 압도적인 매화 군락지부터 고궁과 사찰의 고즈넉한 매화까지, 각 명소마다 다른 매력을 지니고 있다. 올해 3월, 당신의 첫 봄나들이는 매화 명소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